요즘 우리나라에 중국 발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인해 호흡기 환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 수명 100세 시대
라고 하지만, 이 나쁜 대기로 인해 인간의 수명은 다시 70~80세의 연수로 살아가야 할 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공업화
와 산업화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찾아왔고,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 현상이 있으며, 지진, 태풍, 화산폭발 같은 자연 재해와 중동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임없는 말세의 징조가 역력하게 보입니다.
성경에서 말세에는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했습니다. 개인주의를 넘어서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어떤 의류 상표
브랜드 명은 “egoism” 인데,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기주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공중 권세 잡은 자, 마귀의
세상 풍조에 따라 돈과 쾌락 그리고 명예에 집착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식어진 이때에 예수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일반 성도라면 성경 묵상, 기도, 찬송, 공 예배 참석, 새벽기도, 부흥회 참석, 봉사, 헌금, 교제, 전도, 구제 등을 생각할 수 있습
니다. 목회자나 교역자라면 목양, 설교, 심방, 영성상담, 교회 제직 구성, 장례 예배 인도, 설교 작성을 위한 끊임없는 연구 등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 나열한 것들에 본질적인 것이 빠진다면,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종교 생활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그
본질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우리가 천사의 방언을 말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그의 종 바울을 통해 ‘믿음과 소망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계명은 하나님을 목숨 다해 사랑하고, 그 다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랑 없이 행위로만 산다면,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적인 종교생활로 남을 정죄할 뿐, 성도로서 아무 유익
을 끼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인 2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물으시고, 그의 대답에 답하셨는데, 첫 번째 질문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였습니다. 여기서 베드로에게 요구하신 사랑은 헬라어로 ‘아가페’ 인데,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사랑을 적신에 불과한
베드로 네가 감히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까지 질문을 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
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기서는 헬라어로 친구와의 우정을 뜻하는 사랑인 ‘필레오’, 또는 ‘필로스’ 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고심 끝에 “주님, 주께서 다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는 그가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면서, “제
모습 그대로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중 가장 큰 사랑은 독생 성자이신 예수님을 택함 받은 우리에게 그의 생명을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죄인
을 양자로 삼아주신 십자가 구원의 사랑! 그리고 창세 이전에 택하신 주권적 사랑! 우리를 만드신 창조자의 사랑! 성육신의
사랑! 부활로서 믿음의 증거를 주신 사랑! 승천으로 성령을 주신 사랑! 성령으로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인도하시는 사랑!
이러한 주님의 사랑에 우리는 어떻게 보답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시길 “내 양을 먹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세 번 다 똑같은 대답이었습니다. 혹시 이 말씀을 “너희는 모두 선교사가 되어라.”라고 생각하십
니까? 물론,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이루며, ‘삶’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인간이 태어난 본질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면
학교에서 직장인이면 직장에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그곳에서 선교사로서 예수님의 복음정신으로 주님을 전하며 살아
가야 합니다.
저는 20대 초반에 축구 관련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불어권 나라 축구팀과 선수들 이름을 한글로 변환하여 표기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엑셀 작업이었지만, 혼자하기에 벅찼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같이 일할 사람을 구했습니다. 결국 사람을
찾았고, 놀랍게도 같이 일한 그 친구가 근육병 장애인이었습니다. 보통 근육병 하면 ‘루게릭병’을 연상하지만, 근육병의
종류만 해도 26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 친구는 또 다른 종류의 선천적 근육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외출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이라 친구가 단 한명도 없었고, 알바 이후에도 제가 메신저로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대여섯
번은 그 친구 집에 찾아가서, 소변 도우미도 해봤습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음식도 먹여주고, 예전에 녹화했던 축구
비디오 테입도 보여주며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가끔은 메신저로 대화하다가 그 친구가 주기적으로 히스테리를 부려도
제가 항상 참아주곤 했는데, 제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으면, 그 친구가 운명이 다 할 때까지 10년 정
도 사귀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요즘 학교는 그리스도인이 생활하기가 예전보다 더 힘들어졌습니다. 2009년부터 건전가요가 없어졌고, 가요를 모르면
동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학교 축제라 한답시고 방송에서 나오는 이상한 춤들을 추며, 학교 정서를 어지럽힙
니다. 예전에는 중2때부터 학생들의 비행이 시작된다 해서 ‘중2병’이라는 말도 유행했지만, 이제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터 학교폭력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19세기부터 홈스쿨링이 시작되었고, 미국은 20세기 중후반부터, 한국
은 근 몇 년 들어서 집에서 크리스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자진해서 대안학교를 가는 청소년
들도 있으며, 대학교를 가서도 급우들과 어울리지 않고, 교회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청년들은 정말 이 시대의 구별된
젊은이들입니다.
제 말의 의도는 영지주의나 수도원주의 같이 세상과 동떨어져 생활하라는 것이 아니고, 정말로 2010년대부터는 사회
가 이전과 달라져서 학생들이 교회에서 훈련받은 뒤,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국내 선교 전략을
돌리는 시기가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이 시대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사회 내에서 성령의 열매와 은사를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소명이 다 할 때까지,그리스도안에서 그분의 진리를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교회 성도 김정현